아들의 ‘따뜻한 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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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따뜻한 효심’

 남편이 21년간이나 다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장 아이들 학비 걱정부터 생활비 등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경험, 가장이 직장을 잃어본 가정이면 누구나 다 해봤겠지만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이 딱 맞았다.

남편이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서 닭갈비집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집안 사정을 눈치챈 고등학교 1학년 막내가 철이 들었는지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아이가 유난히 추운 겨울날, 첫새벽에 일어나 우유 배달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아들의 생각은 기특했지만 추운 날씨에 동상이나 감기로 고생할 것 같아 걱정스런 마음이 먼저 들어 승낙하기 어려웠다. 남편에게 말하니 살아가면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며 승낙을 했다.

그 후 아이는 알람에 맞춰 새벽 4시면 일어나 옷을 든든하게 입고 장갑을 끼고는 차디찬 새벽바람을 뚫고 나갔다. 아이가 집집마다 현관문에 있는 우유주머니에 우유를 넣는다고 생각하니 고맙고 대견하고 미안했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고 한파라도 휘몰아치면 추워서 어떡하나 싶어 안쓰러웠다.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다음 날 일기예보를 미리 체크하며 나름대로 잘 적응해갔다. 아이는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은 날이면 아침밥이 꿀맛 같다고 했다. 초겨울부터 봄방학까지 거의 석 달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우유를 배달했다.

철든 아들의 노력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나까지 우리 가족의 합심한 노력을 신께서 가상하게 여기신 걸까. 얼마 전 남편이 다시 새 직장을 얻었다. 조건은 전보다 못했지만 그 나이에 적성을 살린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새로 얻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생했구나. 자식, 많이 컸네. 이젠 그만해도 된다. 많이 배웠지?”

남편이 첫 출근한 지 1주일이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내가 일하는 닭갈비집에서 푸짐한(?) 상차림으로 외식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남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해했고, 그동안 아이가 우유 배달을 해 번 돈은 나중에 대학 가서 책 사는 데 쓰라고 저축해 두었다.

추운 겨울 날씨를 마다 않고 어두운 골목길로 씩씩하게 나선 나의 아들. 고맙고 대견한 아들에게 나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들아, 세상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 많은 사람이 땀을 흘려서 만들어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란다. 고맙구나.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항상 굳건히 성장하길 바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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